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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고등학교에 대한 추억

#1.
고등학교때 기억이 많이 남는다. 중학교때 워낙 암울하게 생활해서 그런지. 집안에도 위기가 많았고 학교 생활도 하루종일 농구만 했던거를 빼고는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물론 KaKa군 같은 평생 친구를 얻은 것은 내 중학교 생활의 유일한 기쁨이지만. 어쨌든 중학교때를 기억하면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이 더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행히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공부를 하게 되고. 지금까지도 만나는 좋은 친구들을 얻게 되고. 고1에서 고3으로 가면서 더욱 재미있었다. 뉴스를 보다가 우리 학교가 2010년도에 합격자를 많이 냈다는 이야기를 보고. 추억에 잠겨서 이런 저런 생각나는걸 적어본다.
#2.
초등학교때 친구 아버님께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설마 내가 그 분께 배우겠나 싶었는데.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영일고등학교에 진학했더니 아버님이 계셨다.^^;; 게다가 나는 고2때 문과로 갔는데 문과 담임 선생님으로 오셔서;; 나에게 열심히 수학을 알려주셨다. 그때는 공부를 좀 열심히 하던때라 수업시간에는 아는 것을 확인한다는 느낌으로 약간 설렁설렁하게 있을때가 많았는데.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걸 눈치 채셨는지 가끔 예리한 질문을 던지셔서;; 나를 당황하게 만드실 때가 많았다. 다행히 대답을 잘해서 넘어가기는 했지만. 꽤 아슬아슬했다.
또한 내 초등학교 친구는 나보다 공부를 훨씬 잘했기 때문에. 선생님 앞에서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 친구는 워낙 잘했던 친구니까 아예 경쟁상대로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친구 아버님 앞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게 예의가 아닐까. 하옇튼 열심히 했고. 고2내내 아버님께 열심히 배웠다. 그때는 열정도 많으셨고 그러셨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잘 계신지 궁금하다.
#3.
나름 공부 잘했기 때문에 수능 볼 때 자신감이 있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1997년 수능. 그러니까 98학번들이 봤던 수능이 그 전 해에 비해서 엄청난 수능 점수 인플레가 생겨버렸다. 모의고사때보다 30점이상 올랐지만 다른 사람들이 60점씩 오르다보니. 결국 내가 원하던 학과나 대학에 가지 못하고. 시류에 흘러서. 부모님의 의도대로 학교에 갔었는데.
이차 저차해서 군대 제대이후에 시험을 다시 보게됐다. 자세한 사정은 블로그 통해서 몇 번 이야기했으니 패스하고. 고등학교에 수능 원서를 넣으러 가야하는데. 사실 그게 좀 싫었다. 왠지 모를 패배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일부러 수업 시간에 맞춰서 선생님들 눈에 안 보이게 갔고. 얼른 원서 넣고. 도망치듯 갔었다. 나중에 시험이 끝나고 나서. 가채점을 했더니. 생각보다 성적이 아주 잘 나왔고. 그래서 성적표를 받으러 갔는데. 선생님께서. 내가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학교 다닐때 만나뵜던 선생님이셨는데. 성적표를 주시면서. 올해 학교에서 제일 잘했다며. 1등이라고. 내 얼굴을 몇 번 보시면서. 성적표를 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성적표를 받고. 여느때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고1때와 고3때 담임선생님을 해주셨던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성적표를 직접 주시고 싶었다고 하시면서. 학교로 나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알고봤더니. 성적이 잘 나왔으니 당연히 서울대에 원서를 넣으라는 이야기였고. 그 당시 필요했던 서류들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그것을 작성하자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학벌때문에 공부를 시작한게 아니라 평생 할만한 일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랬으니까.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문제는 부모님이셨다. 큰 아들이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신 이후로. 엄청난 압박이 들어왔다. 내가 왜 공부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유보다. 아들이 그렇게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3개의 카드 중에서. 한 개를 그렇게 써버렸다. 첫 번째 카드는 졸업한 한의대였고. 세 번째 카드는 의대였는데 합격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학교여서. 결국 한의대에 오게 되었는데. 어쨌든 필요한 서류를 쓰기 위해. 고등학교에 가서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공부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때 느낌은. 칭찬을 받으면서도 내 자리가 여기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늦게 공부해서 잘하기는 했어도. 고3때 이만큼 잘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결국 원서를 냈고. 우여곡절끝에 떨어졌는데.(면접 볼때 마지막 번호라는게 느낌이 안 좋았는데) 원서 내고 나서는 선생님을 찾아뵙지도 못했다. 떨어졌으니 더 부끄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늘 선생님들께서 기대를 많이 해주셨는데. 합격을 못했으니 죄송한 마음이 더 들었다.
p.s :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합격하고 나서 동기들과 이야기해보니 만약 두번째 카드를 잘 썼다면 집 근처로 한의대를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어쩌랴. 이미 합격까지 하고 나서 그 사실을 알았으니.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내를 만났고. 좋은 선후배들을 만났으니. 그것도 운명이다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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